3년 전 오늘 아침, 평화롭던 안식일의 새벽을 찢고 가자지구에서 넘어온 수천 명의 테러리스트들이 이스라엘 민간인들을 유린했다. 그것은 결코 군사적 충돌이 아니었다.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인류가 쌓아 올린 문명의 규범을 정면으로 거부한 야만적 폭력이었다. 단 하루의 기습으로 1,029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그중에는 63명의 어린이가 포함되어 있었다. 여성들은 대부분 짐승 같은 폭력에 노출되었고, 한 19살 소년은 부모들에게 보란 듯 머리만 잘라서 가져갔다. 납치된 251명 중 62명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으며, 그들의 시신에는 잔혹한 고문의 흔적이 역력했다. 인간의 언어로 차마 다 담을 수 없는 참혹한 일이 일어났다. 인질을 구출하고 국가의 명분을 지키기 위해 이어진 이스라엘의 전쟁 속에서 1,300여 명의 이스라엘 군인이 희생됐다. 7,150개의 가정이 소중한 가족 구성원을 잃었다. 이는 그냥 숫자가 아니다. 2,143명의 부모가 자녀를, 355명의 아내가 남편을, 880명의 자녀가 부모를 잃은 것이다. 3,772명은 형제나 자매를 잃었다. 그 외에도 약 4만 명의 이스라엘 국민이 신체적 장애와 심각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앓고 있다. 그날 인류를 향해 총
[이 글은 콜로라도 대학 Timothy Fuller 교수가 Law and Liberty 에 기고한 서평을 요약 번역한 것이다.] 스티븐 B. 스미스(Steven B. Smith)는 신간 《정치가론(On Statesmanship)》의 서두에서, 세계가 불타고 있으며 자유주의 질서가 “고도의 쇠퇴(advanced decay)” 상태에 처해 있다고 진단한다. 스미스는 냉소주의와 유토피아주의를 모두 경계하며 여러 상황 속에서도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정치적 지도력, 즉 고대 및 전통적 의미의 정치가에 대한 탐구에 초점을 맞춘다. 그의 진단과 그에 대한 대응은 고대와 현대의 정치가에 관한 사상사에 대한 심도 있는 성찰로 이어지며, 결국 우리 모두, 특히 고등교육기관(대학 등)을 향해 정치가를 키우는 역할을 되살릴 것을 도전한다. 책의 각 장은 “정치가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최선의 통찰을 이끌어내는 독창적인 접근법을 제시한다. 스미스는 현대 문화가 “숫자, 통계, 데이터에 심취하여… 위대한 개인을 단순한 통계적 예외로 치우쳐 버린다”며, 이 과제가 현대 문화에서 종종 평가절하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정치의 본질에 대한 그의 탐구는 고대 지혜를 되찾기 위한
의장님, 시작하기에 앞서 간단한 안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회장에 아직 남아 있는 다른 도덕적 겁쟁이들이 계신다면, 지금 당장 나가주시기 바랍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신사숙녀 여러분, 14년 전, 저는 이 연단에 서서 레드라인(red line)을 그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란의 살인적인 독재 정권이 원자폭탄을, 즉 이스라엘을 파괴하고 전 세계를 위협할 수 있는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하도록 막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우리는 정확히 그것을 해냈습니다. 이제 여러분을 놀라게 할 만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란의 핵시설을 초토화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디. 아주 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총리로서 내렸던 결정 중 가장 쉬운 결정 중 하나였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 죽었을 테니까요. 자, 최고의 아이러니가 뭔지 아십니까? 이스라엘은 스스로를 방어함으로써, 방금 이 회장을 떠난 대표단이 속한 많은 국가들도 방어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들 국가의 지도자 중 다수는 이란의 핵을 제거해 준 것에 대해 사석에서 우리에게 고마움을 표명하기도 합니다. 이보다 더 머리가 띵해지는 위선은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그것이 바로 현실입니다. 우리가 절멸의 위
1년 전 오늘, 우리의 친구 찰리 커크는 유타주 공립 대학교에서 대낮에 공개 토론하던 중 카메라 앞에서 생중계로 참혹하게 살해당했다. 그는 목에 총을 맞았고, 우리 모두가 보는 앞에서 피를 흘리며 숨을 거두었다. 우리 모두 그 순간을 기억한다. 그를 살해한 범인은 트랜스젠더 퍼리(furry)와 교제 중이던 급진적 동성애자 남성이었다. 범행 동기도 분명했고, 증거도 대단히 명백했다. 그 다음에 일어났어야 할 일 역시 명백했다. 곧 핵심 원칙을 중심으로 한 우파의 정치적 재결집, 좌파의 폭력에 대한 통일 전선, 그리고 어쩌면 종교적 대각성이었다. 하지만 그중 어느 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 모두가 기대했던 일들은 대부분 좌절되었다. 정말 믿기지 않는 사실은, 그 기대를 무너뜨린 것이 바로 찰리의 아내 에리카 커크를 향한 공격이었다는 점이다. 일부 사람들이 사악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에리카라는 인간을 파멸시키고 TPUSA(Turning Point USA)라는 단체를 해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에리카가 TPUSA를 이끄는 동시에 이 모든 일을 겪어야 했다는 사실—여기서 '이 모든 일'이란 단순히 슬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와 TPUSA
2025년 9월 11일, 내 남편 찰리 커크(Charlie Kirk)가 총에 맞아 사망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남편의 차디찬 주검을 확인하고 유타주에서 출발해 피닉스에 착륙하여 집으로 돌아오는 24시간 동안은, 마치 열병 속의 꿈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차에서 내리자 아이들이 내 품으로 달려들었다. 아이들은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 무엇을 하고 왔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저 내가 집에 돌아왔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이다. 현관문으로 걸어가는데 가슴을 쥐어짜는 듯헌 낯선 통증이 느껴졌다. 사별의 슬픔이란 이런 기분일까? 이틀 전 밤 철리가 아이들과 함께 컵스(Cubs) 야구 경기를 보며 앉아 있던 그 소파에 앉았다. 내 속에서 파도가 일어나는 것이 느껴졌고, 곧 거세게 몰아칠 것임을 직감했다. "내가 이걸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날 아침, 밴스 부통령 부인 우샤에게 내가 한 말이다. 그녀는 내 손을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과 비행기를 탔을 때를 떠올려 보세요. 착륙 15분을 남겨두고 아이들이 울고불고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치다가도, 비행기가 착륙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안정을 찾고 괜찮아지잖아요? 앞으로의 시간도 그럴 거예요. 딱 다음 1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