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오늘, 우리의 친구 찰리 커크는 유타주 공립 대학교에서 대낮에 공개 토론하던 중 카메라 앞에서 생중계로 참혹하게 살해당했다.
그는 목에 총을 맞았고, 우리 모두가 보는 앞에서 피를 흘리며 숨을 거두었다. 우리 모두 그 순간을 기억한다. 그를 살해한 범인은 트랜스젠더 퍼리(furry)와 교제 중이던 급진적 동성애자 남성이었다. 범행 동기도 분명했고, 증거도 대단히 명백했다.
그 다음에 일어났어야 할 일 역시 명백했다. 곧 핵심 원칙을 중심으로 한 우파의 정치적 재결집, 좌파의 폭력에 대한 통일 전선, 그리고 어쩌면 종교적 대각성이었다.
하지만 그중 어느 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 모두가 기대했던 일들은 대부분 좌절되었다. 정말 믿기지 않는 사실은, 그 기대를 무너뜨린 것이 바로 찰리의 아내 에리카 커크를 향한 공격이었다는 점이다. 일부 사람들이 사악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에리카라는 인간을 파멸시키고 TPUSA(Turning Point USA)라는 단체를 해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에리카가 TPUSA를 이끄는 동시에 이 모든 일을 겪어야 했다는 사실—여기서 '이 모든 일'이란 단순히 슬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와 TPUSA를 파괴하려는 일부 사람들의 광기 어린 욕망을 의미한다—은 소위 보수 운동이라 불리는 진영 내 많은 사람의 도덕적 한계를 보여준다. 이들은 처음부터 보수주의 운동의 진짜 일원이 아니었으며, 오직 사리사욕만을 추구하고 재건보다는 파괴를 바라는 자들이었다.
찰리가 총에 맞았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 그를 쏜 범인이 급진적 트랜스젠더 운동의 일원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은 아주 명백했다. 찰리는 형사 사법제도부터 이슬람의 본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에 대해 때때로 논란이 되는 발언을 하긴 했지만, 광범위한 사람들에게 터무니없이 공격적인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찰리 커크에게 가장 격분했던 사람들은 급진적 트랜스젠더 활동가들이었다. 당시 내가 말했듯, 트랜스 급진 이념에는 폭력을 정당화하는 허용 구조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기본 개념은 "남자는 남자이고 여자는 여자"라고 말하면 그들의 존재를 '지우는(erasing)' 것이라는 논리이다.
따라서 타일러 로빈슨이 범인으로 밝혀진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이 사건의 배후가 누구인지는 지극히 명백했다.
그렇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어야 했나? 최소한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 원칙을 중심으로 정치적 연합이 이루어졌어야 했다. 그것이 바로 찰리가 유명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대학 캠퍼스에서의 토론과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활동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찰리를 무슨 급진적이고 광기 어린 몹쓸 사람으로 묘사하려고 한다. 하지만 찰리는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따라서 정치 단체를 파괴하려는 자들에 맞서 사람들이 힘을 모았어야 했다.
또한 종교적 각성 또는 부흥도 일어났어야 했다. 찰리는 자신의 신앙이 얼마나 중요한지 공개적으로 말하곤 했다.
찰리의 암살 이후, 그의 추모식은 거대한 종교적 부흥 집회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적절할 만큼 성대하게 열렸다. 저는 그 자리에 함께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
정치적 폭력과 폭력 정당화 구조에 맞선 일정 수준의 정치적 재결집, 나아가 우파 진영 전반의 종교적 부흥, 교회의 회복, 그리고 찰리가 진정으로 아꼈던 사회적 가치의 원칙 있는 재건을 원했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경계선'이 필요했다.
사회적 가치를 짓밟는 자들, 그 운동의 일부가 아니었던 자들, 혹은 내부에서 그 운동을 이용해 먹은 자들을 저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상황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가 사망하고 두 달쯤 지났을 때, 저는 TPUSA 행사 연설에서 "개인적인 감정이 도덕적 판단을 대신할 수 없으며, 정치는 '청바지 돌려 입기(Sisterhood of the Traveling Pants)' 같은 사적 친목이 아니라 원칙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감정적인 연대를 위해 기본적 진실과 단순한 원칙을 희생하려 한다면, 당신은 미국 국민에 대한 근본적인 의무를 배신한 것이다.
TPUSA는 여전히 건재하다. 훌륭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지만, 캔디스 오웬스 같은 사람들 때문에 많은 가능성둘이 산산조각 났다. 그녀는 비극이 일어난 이후 거의 1년 내내 TPUSA와 에리카 커크를 공격하고, 거의 모든 사람에 대해 황당하고 광기 어린 음모론을 유포해 왔다. 메건 케리는 그녀를 옹호했고 지금도 옹호하고 있다.
터커 칼슨 역시 정확히 똑같은 행태를 보였다. 그는 지미 도어(좌파 코미디언)와 함께 찰리 커크를 둘러싼 음모론을 떠들며 웃음을 터뜨렸고, 이어 에리카 커크가 올바르게 애도하지 못하고 있다며 그녀를 모욕했다.
이는 좌파에게도 똑같은 짓을 할 수 있는 명분을 주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좌파조차 정치적 폭력을 규탄하고 찰리의 죽음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러나 우파 내부 인사들이 원칙을 무너뜨리면서 그 모든 정당성이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코미디언 드루스키(Druski)가 X(구 트위터)에서만 거의 2억 회의 조회수를 기록한 영상은 에리카 커크를 조롱하는 것이다. 캔디스 오웬스는 그 소식이 얼마나 멋진지 웃어대는 영상까지 올렸다.
이것이 지금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정치적 통합 따위는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황당하고 추악한 음모론을 퍼뜨리던 바로 그 사람들이 스스로 보수 운동의 일원이 아니라고 공개 선언했기 때문이다.
나 같은 사람들이 그들은 보수가 아니라고 지적하며 진실을 말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 스스로가 그들은 보수주의 운동의 일원이 아니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날 이후 터커 칼슨은 자신은 더 이상 공화당원이 아니라고 선언하며 트럼프를 적그리스도라고 불렀다. 캔디스 오웬스는 사탄주의 시오니스트들이 백악관을 점령하고 있다며 의회가 미친 왕 트럼프를 축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메건 켈리는 팟캐스트 진행자 숀 라이언과의 방송에서 공화당이 미국 국민을 배신했으며 이제 거기 남은 것은 엡스타인의 팬들뿐이라고 선언했다.
통합이 지속되기를 바랐다면, 영적 부흥을 원했다면, 그 모든 것을 원했다면 선을 지켜야 했다. 우리가 치지 않더라도 그 선은 결국 어떠한 방식으로든 그어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지금,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이것이다. 결국 보수의 미래를 원한다면 일련의 보수적 원칙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원칙은 기본적인 진실과 품위 위에 구축되어야만 한다.
진실과 품위가 없다면 보수주의 운동을 구축할 수 없다. 다른 그 어떤 것을 가지고도 그런 운동은 만들 수 없다.
절대로.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데일리인사이트 조평세 번역 |


